
매몰 비용 오류, 우리는 왜 손해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할까
결국 실패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드는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이거나, 재미없는 영화를 돈을 주고 봤으니 끝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오래 전에 구매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헬스장 회원권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에 무리하게라도 다녀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보기도 했겠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바로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입니다. 이는 이미 투자한 비용(시간, 돈, 노력)을 회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 비용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계속 내리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본전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부르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죠.
이 오류는 우리의 일상과 중요한 금융 결정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주식 투자에서 손실이 나는 종목을 ‘조금만 더 버티면 오를 거야’라는 생각으로 계속 보유하거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출한 것을 ‘낭비’로 인정하는 것을 심리적으로 매우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 낭비를 정당화하기 위해, 혹은 그 낭비가 의미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자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리는 단순히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에서도 빈번히 나타납니다. 예산을 초과하고 기한을 넘긴 사업을 ‘여기까지 왔는데 중단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완수하려 드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문제는, 이미 지출한 비용은 회수할 수 없는 ‘매몰 비용’이라는 점입니다. 합리적인 결정은 오로지 미래의 결과와 앞으로 추가로 투입해야 할 비용만을 고려해 내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과거에 쏟아 부은 것들에 매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거에 집착하게 만드는 심리적 메커니즘
매몰 비용 오류가 발생하는 데는 몇 가지 뚜렷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합니다. 첫째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입니다. 사람은 동일한 크기의 이득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보는 것을 훨씬 더 크게 느낍니다. 이미 잃은 돈(매몰 비용)을 인정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고통이므로,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지금 그만두면 확실히 손해지만, 계속하면 손해를 만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그 위험을 감수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자기 합리화’의 욕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결정이 현명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이로 인해 잘못된 투자나 선택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판단력을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초기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를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길을 더 깊게 파고들게 됩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까지 투자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퇴출의 신호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책임감’과 ‘끈기’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합니다. 중도 포기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문화 속에서는, 아무리 비합리적인 상황이라도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쉽습니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켜, 객관적 데이터보다는 감정과 체면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듭니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매몰 비용의 함정
이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고 싶지만, ‘지금까지 네 해를 이 분야에 투자했는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만족스럽지 않은 길을 계속 걸어가는 학생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여기서 매몰 비용은 ‘넘겨야 할 산’이 아니라 ‘빠져나와야 할 늪’입니다. 네 해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회수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앞으로의 40년을 이 일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행복할까?”여야 합니다.
소비 행동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자주 입지도 않는 옷을 옷장에 계속 보관하거나, 맛이 별로인 음식을 돈 주고 샀으니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예입니다. 이때 우리는 물건 자체의 효용이 아니라, ‘지불한 금액’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간과 위장을 불필요하게 차지하게 되죠. 커뮤니티에서 게임이나 특정 활동에 과도한 시간을 투자한 유저가 ‘여기까지 해왔는데 그만두면 내 시간이 허비된 것 같아’라는 글을 올리는 모습도 같은 심리의 발로입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장애물
매몰 비용 오류는 단순한 심리적 실수가 아니라, 경제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이 오류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신, 자신의 자존감과 과거 선택을 보호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이는 결국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지며, 더 큰 기회 비용을 치르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른 더 나은 투자처나 삶의 방식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죠.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실패가 명백한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계속 예산을 투입하거나, 수익성이 나지 않는 지점을 문닫지 못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경영진은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수십억이…’라는 생각에 휩싸여, 프로젝트의 미래 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외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정은 개인 투자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평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오히려 하락세인 종목에 추가 매수하는 ‘평균단가 내리기’ 행위가 반드시 현명한 전략은 아닙니다. 그것이 매몰 비용 오류에 기반한 행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와 감정의 싸움
매몰 비용 오류를 극복하는 핵심은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뇌가 감정과 과거 경험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감정은 즉각적이고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만, 데이터와 논리는 차분한 분석을 요구합니다. 이 둘의 충돌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감정의 편에 서게 되죠. ‘내가 여기에 쏟아 부은 것’에 대한 애착이 ‘이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에 대한 객관적 전망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을 의식적으로 분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투자한 것’과 ‘미래의 전망’을 다른 종이에 따로 적어보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이미 들어간 시간과 돈, 노력을 나열하고, 다른 쪽에는 이 프로젝트(또는 투자, 관계 등)를 계속할 경우 예상되는 미래의 이익과 비용, 그리고 중단할 경우의 이점을 적어보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시각적으로 매몰 비용이 미래 결정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중립적 관점의 중요성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만약 내 친구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우리는 타인의 문제에는 훨씬 더 논리적이고 냉정한 조언자를 자처합니다. 그 조언이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합리적인 목소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객관적인 피드백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커뮤니티나 정보 사이트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길입니다. 다만, 그곳에서도 매몰 비용 오류에 빠진 사람들의 공감만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경험과, 예를 들어 ‘그만두었을 때 오히려 좋았던 점’을 강조하는 사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당신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중단 자체가 실패가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용적 전략
매몰 비용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마음가짐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전 결심(Pre-commitment)’입니다. 중요한 결정에 앞서 미리 기준점을 설정해 두는 것이죠. 특히, 주식 투자 시 “이 종목은 20% 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매도한다”라는 규칙을 정해 놓습니다. 혹은 프로젝트에 “6개월 후 중간 평가에서 A, B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재검토에 들어간다”는 객관적 지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손실이 발생했을 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회 비용’에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매몰 비용 오류는 현재의 선택에 매여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 내가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그 시간과 자금,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죠. 이는 이미 잃은 것(매몰 비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 잃을 수 있는 것(기회 비용)에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손실을 인정하는 용기와 재설정의 기술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손실을 인정하고 기록에 남기는 것’입니다. 경제학이나 회계에서 매몰 비용은 ‘차감한다(write off)’는 행위로 처리합니다. 개인에게도 이와 유사한 의식적 행위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 관계(또는 투자, 프로젝트)에 OO이라는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고, 그것은 더 이상 회수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여기서 멈춘다”라고 선언하는 것이죠. 일기장에 적거나 신뢰하는 사람에게 말로 표현해 보세요. 이는 심리적 종결을 짓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재설정(Fresh Start)’의 마인드를 갖는 것이 유용합니다. 새로운 분기, 생일, 이사와 같은 시점은 심리적으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입니다. 이때를 이용해 매몰 비용에 연연하던 일들에 대한 결정을 재검토해 보세요. ‘새로운 시작’이라는 프레임은 과거의 투자를 ‘학비’ 또는 ‘값진 교훈’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교훈을 얻었다면 그 투자는 완전한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지속적 평가와 탈출 계획 수립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주기적인 평가를 시스템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책입니다. 일정 기간마다(분기별, 반기별) 자신의 주요 투자(금전, 경력, 관계)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 평가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와 명확한 성과 지표에 기반해야 합니다. “내가 느끼기에…”가 아니라 “지난 6개간 달성한 목표는 A, B, C이며, 이는 내가 설정한 기준의 OO%에 해당한다”와 같이 객관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탈출 계획(Exit Strategy)’을 생각해 두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언제, 어떤 조건에서 그만둘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죠. 이는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현명한 위험 관리입니다. 탈출 계획이 있다면 상황이 나빠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부터 스타트업 창업, 개인적인 도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기본 원칙입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시선으로
매몰 비용 오류는 우리가 과거에 쏟아 부은 것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인간다운 심리입니다. 따라서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편향이 우리의 중요한 결정을 좌우할 때, 그것을 인지하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의사결정의 기준을 ‘과거에 투자한 것’에서 ‘미래에 기대되는 것’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데 있습니다.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비용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부터 어떤 행동이 가장 현명한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지 편향과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은 https://www.john-uebersax.com 에서 다루는 연구 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체스 게임에서 이미 잃은 말을 되돌리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더 중요한 말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고수는 잃은 말을 잊고, 현재 보드 위에 남은 말로 최선의 수를 계산합니다. 우리의 삶과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투자가 아깝다고 느껴질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내가 이 일에 단 한 푼도, 단 한 순간도 투자하지 않은 상태라면, 오늘 이 순간 나는 이것을 시작하겠는가?”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매몰 비용의 덫에서 벗어나야 할 신호입니다. 중단이나 방향 전환은 결코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더 유망한 미래를 위해 재배분하는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후퇴에 가깝습니다. 이미 투입된 비용에 발목 잡히기보다, 앞으로의 선택이 가져올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의사결정은 한층 가벼워집니다. 결국 현명함이란 끝까지 버티는 데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멈추고 언제 방향을 바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